
조선 메시아의 탄생은 10년도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저는 월스트리트 저널 한국 특파원으로 부임하기 위해 서울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에 관한 사전 자료를 읽던 중, 김일성의 장로교 성장 배경에 대한 언급들이 눈에 띄었고, 그의 기독교적 배경이 그가 반세기 동안 이끌었던 국가를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런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무렵, 저는 토니 남궁(Tony Namkung)을 만났습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약 100년 전 평양 장로교 신학교에서 정교수로 강의한 최초의 한국인이었습니다. 토니는 스스로 학자의 길을 걷다가, 이후 제2의 인생을 미국 정부의 비공식 자문으로서 활동하며 수십 년에 걸친 미국의 단속적인 대북 관여 시도에 참여했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그는 수십 차례 평양을 방문했으며, 빌 클린턴, 당시 구글 회장이었던 에릭 슈미트 등을 북한 수도로 안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제가 토니를 처음 만난 것도 바로 이 "북한 전문 해결사"로서의 역할을 통해서였습니다.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지금 현재 북한을 상대하는 일도 흥미롭지만, 우리 둘 다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토니와 저는 거의 40년에 가까운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토니도 교회에서 자랐지만 이후 다소 거리를 두며 보다 복잡한 신앙적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우리 두 사람 중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완전히 떠난 적이 없으며,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 울림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이후 6년 동안, 토니는 뉴저지의 자택에서 서울로 정기적으로 왔고, 우리는 그가 베이징을 거쳐 평양으로 떠나기 전 그랜드 하얏트에서 함께 식사를 나누곤 했습니다. 귀국길에도 다시 만나, 평양의 최근 동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 우리를 진정으로 생동감 있게 만드는 주제로 넘어가곤 했습니다. 바로 평양의 기독교적 과거, 그리고 그 신앙이 김일성과 그가 세운 국가를 어떻게 형성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대화와 대화 사이, 저는 그 주제 자체가 아니더라도 인접한 주제에 관한 것이라면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읽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토니는 점점 더 강하게 제가 배우고 있는 것들을 무언가 야심 찬 결과물로 만들어보라고 격려했습니다. 제가 읽고 싶었던 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가 말했습니다, 직접 써야 한다고요. 저는 반박했습니다. 본업만으로도 이미 벅찼습니다. 게다가 저는 한국인도 아니고, 한국어 실력도 어느 정도는 되지만 원어민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습니다. 토니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이런 주제야말로, 그가 말하길, 나라의 이쪽저쪽에 가족의 뿌리를 두거나 교회와 가깝거나 혹은 멀어진 것에서 비롯되는 모든 선입견 없이,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이토록 민감한 주제를 그것이 요구하는 섬세함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토니와의 첫 대화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저는 그 사라졌던 이야기를 조선 메시아에 담아냈습니다. 저희는 4월 16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뉴욕에 계신다면, 그 자리에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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